공동 집필 프로젝트 실패 회고
작년 12월에 불현듯 든 생각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였다. 같이 일하고 계신 컨설턴트분들과 함께 책을 써 보면 어떨까? 몇 분과 가볍게 얘기를 나눴고 반응이 긍정적이었다. 그래서 전체 대상으로 제안 발표를 했다. 설득이 필요한 사람들도 몇 있었지만 결국 19명 중 1명을 제외한 모두가 참여하기로 했다. 그렇게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물론 지금은 중단된 상태다. 그래서 실패 회고를 남기고 있다. 18명으로 시작한 프로젝트에서 어쩌다 절반이 떠나게 됐는지, 그 이야기를 해보려 한다.
왜 시작했나?
시작한 동기는 단순하다.
- 청년층이 취업에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 우리는 그 청년층 중
개발자가 되려는사람들과 직접 대면하며 그들의 프로젝트와 취업을 돕고 있다. - 이곳 이외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청년층이 많이 있다.
- 2에서 우리가 준 도움은 3의 독자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이다.
프로젝트 컨설턴트 라는 이름으로 역할을 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개발자가 되려는 청년층을 돕는다 는 취지 아래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취업에 관한 것도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이 일은 우리 업무의 연장이라고 볼 수 있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중요한 업무는 바로 코칭이기 때문이다. 아직 경험이 부족한 청년층에게는 코칭이 필요하다. 이 책이 우리를 대신해 많은 청년들에게 코치 역할을 해주길 바랐다.
우리에게 쌓여있는 경험과 컨텐츠를 활용하고 싶다는 점도 있었다. 우리가 만든 컨텐츠에는 세부적인 기술에 관한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개발자의 활동 전반에 걸친 폭넓은 내용이 많다. 자소서, 포트폴리오, 면접 등 취업에 직접 닿아있는 내용도 많이 있다. 위치상 우리가 가진 강점도 분명히 있다고 봤다. 우리가 매일 만나는 것이 바로 어려운 취업 시장에서 분투하고 있는 청년층이기 때문이다. 그들의 사정을 가장 잘 알고 있고, 그들의 눈높이에서 설득력 있게 얘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개발자 커리어에 대한 책들은 보통 이미 개발자가 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거나, 너무 장기적이고 추상적이라 청년층이 다가가기 힘들다. 그 간극을 우리가 메울 수 있다고 생각했다.
내부적으로는 같은 일을 하고 있는 동료들과 뭔가 실질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목적도 있었다. 우리는 같은 일을 하지만 함께 일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오히려 독자적으로 맡은 일을 하는 쪽에 가깝다. 공동 목적으로 일을 하게 되면 교류도 많아지고 결속력도 생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자극이 필요했던 점도 있다. 4년 넘게 이곳에 있다 보니 좀 타성에 젖어가는 느낌이라 변화를 주고자 했다.
무엇을 쓰고자 했나
기획을 진행하면서 방향이 많이 바뀌었다. 처음엔 가벼운 마음이었다. 우리가 쓸 수 있는 것 중에 좋은 것을 추려내면 충분하지 않을까? 그때 생각한 제목은 개발자의 지혜. 음..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이건 확실히 나이브 했다. 이것저것 모아놓는다고 책이 되기는 힘든 것이다. 그 뒤로 편집자와 이야기하며 계속 방향을 조율해갔다. 이래저래 바뀌긴 했지만 개발자가 되려는 청년층에게 도움이 되는 내용을 다룬다는 중심은 같았다. 최종 기획안은 이렇게 구성했다.
- 제목 : AI 시대 개발자 역량
- 부 구성
- 1부 - 개발자의 본질 : 개발자라는 직업의 본질을 되짚고, 그 안에 있는 다양한 역할의 스펙트럼을 살핀 뒤, AI가 가져온 변화를 개발자의 관점에서 조망한다. 책의 도입부 역할을 맡는다.
- 2부 - 개발자 역량 : 책의 중심 파트로 AI 시대에도 중요하게 여겨야 할 개발자의 역량과 향상 방법을 다룬다.
- 3부 - 취업 : 취업 전략 수립과 자소서, 포트폴리오, 면접 등 각 단계에 도움이 될 팁을 정리한다.
이 책은 엣지가 있는 이야기는 아니다. AI나 코드, 설계 등 구체적 기술 대신 그것의 근간이 되는 역량을 다루고자 했다. 이른바 소프트 스킬 책인 것이다. 우리가 담고자 했던 것은 AI 이전에도 중요했고, 앞으로도 중요하게 여겨야 한다고 생각하는 역량들이었다. AI로 인한 변화와 불안도 중요한 취지였다. 이제 시장에 진입하려는 사람들(청년층)은 그 변화에 좀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 그들에게 불안을 이겨낼 힘이 되어주고 싶었다. 그리고 우리가 매일 만나는 미래 세대 개발자의 이야기를 담으려고 했다.
뭐가 문제였지?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공급자(제작자) 입장을 벗어나지 못했던 점이다. 그냥 우리가 가진 컨텐츠는 좋을 것이고 그걸 엮으면 책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다. 좋은 걸 모아놓으면 알아서 찾아오고 읽고 도움을 받겠지? 했던 것이다.
교육생들에게 많이 하는 얘기 중 하나가 공급자 입장을 벗어나라 라는 것이다. 사용성이 떨어지는 소프트웨어들은 대부분 공급자 입장만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대표적으로 정부의 소프트웨어들이 그렇다. 반대로 토스 같은 서비스 기업은 어떻게든 사용자가 편하게 쓸 수 있도록 매끈하게 만든다. 그래서 쓰는 사람의 입장에서, 사용자 또는 고객 또는 수요자 관점에서 판단해야 한다고 반복해서 얘기한다. 하지만 나 자신도 실제로 제작자가 되니 그 입장을 벗어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책에 관심을 보일 사람은 누구일까?라는 간단한 질문조차 처음엔 생각치 못했다. 교육생들한테는 맨날 강조하면서 ㅎㅎ 나중에서야 타겟 리서치를 하며 왠지 부끄러웠다.
일 진행 방식에도 문제가 있었다. 내가 너무 많은 역할을 맡으려 했던 것이다. 집필진의 참여 부담을 낮추기 위한 것이기도 했고, 내가 기획하고 시작한 일이니 당연한 면도 있었다. 출판사 계약 단계까지는 내가 진행하고 그 뒤에 집필진이 본격적으로 참여하는 모습을 생각했다. 그런데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하다 보니 지치는 부분도 있었고, 이게 맞나 스스로 판단하기 어려운 때도 많았다. 결속력을 기대하고 시작한 일인데 정작 나 혼자 다 하고 있었던 셈이다. 소통 비용이 증가하더라도 각자 자기에게 맞는 역할을 조금씩 맡았으면 더 좋았지 않았을까 싶다.
중단 결정
편집자와 조율을 하면 할수록 처음 일을 시작할 때와는 상황이 많이 바뀌었다. 집필진의 허들이 꽤 높아진 셈이다. 그래서 참여 의사를 다시 한 번 설문조사 했고, 그 결과 절반의 인원이 이탈했다. 남은 인원에게는 부담이 배로 증가한다. 그것 때문에 추가 이탈이 생길 수도 있다. 이게 가장 큰 이유였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 상품성 : 출판사가 원하는 수준의 상품성을 갖추기 힘들다고 봤다. 되는 방향을 찾으려면 얼마든지 가능했을 것이다. 그냥 내가 시원하게 지르지 못해서 그런 것이다. 한 마디로 정리하자면, 출판사 : 여기까지 오셔야 합니다. 나 : 아 그건 좀 오바 같은데. 의 문제였다.
- 비협조 리스크 : 브랜드 활용 협조 요청에 처음엔 긍정적이었지만 이후 여러 제약 조건을 제시하는 등 태도가 바뀌었다. 부트캠프 운영 주체에도 기류 변화가 많이 느껴진다. 집필 동안이나 출판 이후에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봤다. 이건 나 혼자 책임질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서는 문제이기도 하다.
배운 점
쉽지 않다. 하지만 꿈만 꾸고 있을 순 없다. 그래서 시작했고, 쉽지 않다는 것을 배웠다. 당장 기획서를 보낸 6개 출판사 중 4개가 바로 거절 의사를 보였다. 남은 2개 중 한 곳도 기획 방향 조율에 실패하여 떠나보냈다. 그래서 마지막 한 곳과만 이야기를 좀 더 진행할 수 있었다. 결국은 우리 쪽 결정으로 중단하게 되었지만.
좋은 취지만 가지고 되는 건 없다. 좋은 취지가 있으면 관심 있는 사람들이 알아보지 않을까 생각했다. 사실 판매보다는 취지에 목적이 있었다. 하지만 상업 출판을 하려면 결국 판매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자비출판, PODPrint On Demand, 1인 출판사 등 쉽게 책을 낼 방법은 많지만 우리 목적에는 맞지 않다고 봤다. 그러니 상업 출판이라는 아주 강한 제약이 남았고, 상품성의 부족으로 기획이 계속 핑퐁됐던 것 아닌가 싶다.
저자로서 근거가 부족했다. 한 마디로 너 뭔데, 네임밸류 부족이다. 내용의 문제라기보다 우리를 보여줄 근거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유명 개발자도 아니고, SNS 영향력이 있는 것도 아니고, 유튜버도 파워 블로거도 아니다. 출판사 입장에서 우리를 판단할 근거가 부족했다. 생각해보면 이건 채용할 때도 똑같은 것 아닌가 싶다. 신입을 뽑는 입장에서 회사는 리스크를 줄이려 한다. 거기 필요한 게 근거다. 그래서 포트폴리오 같은 걸 만드는 것이고. 책 대신 대안으로 생각했던 공동 블로그라도 미리 했더라면 출판사에서 좀 더 신뢰할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반성 위주라 안 좋은 점만 있었던 것 같은데 좋은 점도 물론 있었다. 목적이 생기면 일을 하는 게 수월해진다는 걸 오랜만에 느꼈다. 공부하는 것도 즐거워진다. 책을 쓰고 싶으니 글쓰기를 업그레이드 할 기회로 삼고 싶었다. 그래서 출판이나 글쓰기에 관한 책을 몇 개 읽어봤다. 어찌보면 개인적으로는 가장 큰 수확인 것 같기도 하다.
제럴드 와인버그의 글쓰기책 : 소재 수집, 글 구성 등에 도움이 됐다. 글쓰기에 대한 부담감을 많이 덜어주기도 했다.
출판사가 OK하는 책쓰기 : IT 출판사의 편집자(현 출판사 대표)가 쓴 책이다. 출판 프로세스와 편집자/출판사의 입장을 알 수 있어 도움이 됐다.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 : 유명 작가에 유명한 책이라 선택했으나 그닥 도움은 안 됐다. 타겟이 고등학생~대학생 정도에 맞춰져 있다고 느꼈다.
그래서.. 뭐하지?
이 기획에 꽤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였다. 사람들을 모으는 것도 쉽지 않았다. 모여서 뭔가 하기로 했으니 다른 아이템으로 바꿔볼까 싶기도 하지만, 이전만큼 내가 주도하는 걸 바라진 않고 있다. 많은 사람을 이끌고 가기엔 아직 나의 열정과 역량이 부족하다고 느낀다.
한 가지 생각이 남는다. AI의 도움으로 이제 누구나 책(이라고 부르기 민망한 것을 포함해)을 낼 수 있게 됐다. 시장에는 AI가 쓴 것이 분명해 보이는 책들이 쏟아지고 있다. 정작 상업 출판의 문턱은 이렇게 높은데 말이다. 아이러니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책이, 어떤 컨텐츠가 살아남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