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점 vs 안 좋은 점 + 배운 점
3년 회고의 마지막 글이다. 이곳에서 일하며 느낀 점, 배운 점을 정리하려고 한다.
이전 글
- 첫 번째 글 : 나 개발자 크리에이터
- 두 번째 글 : 교육과 변화
좋은 점
보람 있음
회사 일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는 것은 드문 일이라고 생각한다. 보람보다는 만족감이 더 가까운 표현일지도 모르겠다. 일을 잘 마무리하면 주변에서 긍정적인 피드백을 주기도 하고, 인정을 받아 좋은 보상을 받기도 했다. 기억이 퇴색되어 그런 걸지도 모르겠지만 그때 보람찼나? 만족감이 들었나? 라고 하면 딱히.. 라고 답을 하고 싶다. 개발자로서 만족스러웠던 순간은 종종 있었다. 좋은 설계를 만들기 위해 고민하고 배웠던 것을 적용해서 잘 작동하는 모듈을 만들고 나면 꽤나 보람찼던 것 같다. 내가 해냄 이랄까? 일 이라는 것의 속성상 보람을 느끼는 것은 드문 것이 당연한 것 아닐까?
하지만 이곳에서는 보람을 느낀 순간이 꽤 많았다. 우선은 교육생들로부터 감사 인사를 받을 때이다. 작게는 코드에 관한 질문부터 설계나 트러블 슈팅 같은 프로젝트와 관련된 것이나 취업, 커리어 고민에 관한 것 까지 다양한 도움을 주고 있는데 이에 대해 감사를 표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때는 확실히 보람이 있다.
그리고 긍정적인 반응이 있을 때이다. 교육생들이 내 얘기에 집중하는 모습을 보거나, 이후 관련된 질문을 할 때 또는 유튜브 라이브에서 채팅 참여가 활발할 때, 나에 대한 교육생의 의견 중 재미있고 긍정적인 것을 볼 때이다.
교육생의 성장을 보는 것도 보람찬 일이다. 교육의 목표는 대상자가 스스로 답을 찾아가는 방법을 알게 하는 것에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걸 도와주는 사람이고. 물고기를 주는 대신 낚시하는 방법을 가르치는 것. 이 관점에서 정답을 그냥 주기보다는 그 길로 유도를 하려고 노력한다. 이게 잘 통해서 교육생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고 나중에 잘 됐다라는 얘기를 듣는 것은 보람찬 일이다.
정리해보니 대부분 피드백에 대한 것이다. 보람을 느끼는 데에는 스스로 느끼는 만족감(나 잘했어)도 중요하겠지만 이 또한 외부(교육생의 반응)로부터 오는 것 같다.
열정 넘치는 교육생
이곳에 왔을 때 가장 놀랐던 것은 열정 넘치는 교육생들이 많다는 것이었다. 자신의 프로젝트를 위해 밤낮없이 개발하고 무엇이든 거침없이 해내는 모습에 많이 놀랐었다. 자연스레 나도 저 나이 때 저렇게 열심히 했던 적이 있었나? 하는 질문이 떠올랐다. 저런 친구들이 회사에 있다면 정말 든든하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이렇게 열정이 많은 청년들이 아직 자기 일을 찾지 못하고 있는 현실에 안타까움도 많이 들었다. 이렇게 열정 넘치는 교육생을 만나는 것은 나에게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나도 덩달아 열심히 하게 되기 때문이다.
높은 자유도
직접적으로 가장 큰 장점은 업무의 자유도가 높다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과정을 운영하는 주최측의 요구를 들어주고, 교육생의 피드백에 문제가 없다면 내가 하고 싶은 방식으로 운영해도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디테일하게 통제를 하고 않는다. 업무 강도 또한 스스로 조절할 수 있다. 매일 모든 팀을 미팅하며 빡세게 할 수도 있고, 미팅 보다는 교육 컨텐츠 제작 위주로 해도 상관없다.
내가 배웠던 것들을 정리하고 공유할 기회
교육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내가 알고 있는 것을 남에게 전달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동안 일을 하며 배웠던 것들을 정리할 일이 많다. 오랜 기간 현실 개발자로 살아가며 배웠던 것들의 정수를 교육생에게 전달해 주려고 노력한다. 글로 정리하기도 하고 교육생과 면담을 하며 생각을 정리하기도 한다. 어쩌면 교육생에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이 부분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기술적인 공부는 스스로 해도 상관없다. 하지만 효율적으로 배우는 방법, 입사와 회사 생활에 대한 현실적인 조언, 좋은 개발자가 되는 방법 같은 것은 경험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가끔은 내가 사회 생활을 시작할 때 이런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조금 부끄러운 얘기이긴 하지만 교육생이 부럽기도 하다.
어려운 점
명확하게 남는 게 별로 없다.
원래 하던 일에 비해서는 명확히 남는 게 별로 없다는 것이다. 퇴근길에 가끔은 오늘 하루 종일 뭐 했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분명 바쁘게 보낸 것 같은데.. 내가 주로 하는 일과 일의 가시적인 결과물이 일치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주로 하는 일은 교육생을 코칭하는 것이다. 작게는 간단한 질문에 대답을 해주는 것도 있고 좀 길게 복잡한 설계 이슈나 취업 상담을 하기도 한다. 개발 관련으로는 디버깅이나 문제 해결을 같이 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것은 모두 결과물이 보이지 않는다. 이게 좀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교육이라고 하면 원래 이런 건가 싶기도 하다. 반대로 가시적인 결과물은 대부분 문서(노션, 워드, 엑셀, 파워포인트, …)들이다. 이건 나의 일을 돕기 위한 재료일 뿐이라고 생각된다.
그래서 어느정도 적응한 뒤로는 사이드 프로젝트라도 하고 있다. 일과 시간에 진행하기는 어렵지만 gpt나 cursor 등 최근의 개발 도구에 도움을 받아 작은 자동화 프로그램이나 튜토리얼, 교육생과 함께 사용할 앱도 만들어본다.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다.
교육생은 약 5개월간 3개의 프로젝트를 한다. 한 프로젝트에 약 7주이고 프로젝트마다 다른 컨설턴트를 만나게 된다. 나도 7주마다 새로운 반을 맡고 새로운 교육생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보통 한 반에 60명 정도 있으니 5개월간 180명 정도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숫자로 쓰고 보니 엄청난 것 같다..
새로운 교육생들을 만나고 서로 알아갈만 하면 떠나게 된다. 그렇게 3번 만남과 보냄을 하고 나면 한 기수가 끝나고 다음 기수를 맞이할 준비를 하게 된다. 게다가 서울을 포함해 5개의 지역 캠퍼스로 이동하는 것도 시간이 빨리 가는 것 처럼 느끼게 만드는 것 같다. 게다가 함께 일하는 코치나 운영 담당 직원들도 빠르게 바뀐다. 우리 뿐만 아니라 그들도, 그리고 교육생도 시간이 참 빨리 지나간다고 공통적으로 말한다.
많은 사람들이 스쳐가는 곳이지만 나는 3년째 있다보니 왠지 남겨진 것 같은 느낌이 들때도 있다. 특히 교육생들이 어제 까지 있던 빈 강의실을 보면 그런 느낌이 더 든다.
힘들어하는 교육생
교육 과정 자체도 꽤나 빠듯한데다가 첫 취업이라는 중요한 분기점에 있다 보니 힘들어하는 교육생들이 많이 있다. 첫 반을 맡고 며칠 안 됐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과정을 그만두고 나가고 싶다는 교육생이 있었다. 코로나 때라 화상 미팅으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1학기 때 과정을 따라가느라 너무 힘들었고 개발이 나의 분야가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이전에 직장 생활도 했었고 일을 하며 개발을 직접 해보고 싶다는 뜻이 생겨 이 과정에 왔다는 얘기도 했다. 나는 그 목적을 다시 떠올리고 1학기와 2학기는 다르니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고 다잡았었다. 다행히 남기로 했었고 과정을 끝마치기까지 했다. 지금은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지만 잘 한 일이라고 아직도 생각하고 있다.
첫 취업은 많은 사람들에게 실패와 좌절의 과정이다. 대부분의 교육생은 개발자로서 첫 취업을 앞두고 있다. 당연하게도 많은 실패들을 보게 된다. 열심히 하던 친구가 어느 날 갑자기 말없이 결석을 하기도 하고 밝았던 친구가 우울해 보이기도 하고 그런 일이 다반사로 벌어진다.
옆에서 보고 있자면 참으로 안타깝다. 내가 첫 취업을 하던 때 보다 더 취업문이 좁아진 느낌이기 때문이다. 충분히 좋은 역량을 갖추고 태도 또한 우수함에도 취업이 안되어서 마음고생을 하고 있는 교육생을 보면 참 이게 무슨 국가적인 낭비인가 싶은 생각도 든다. 종종 자소서나 포트폴리오를 통해 또는 대화를 하며 알게 되는 그들의 스펙에 놀라기도 한다. 왜 이런 친구가 여기에서 이러고 있지? 하는 생각이 들었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비효율적인, 어쩌면 불합리까지 하기도 한 이 과정 속에서 실패와 좌절을 겪는 교육생들을 보고 있으면 나도 기운이 빠지곤 한다.
상태가 좋지 않은 교육생
반대로 상태가 좋지 않은 교육생을 만나는 것도 고역 중의 하나이다. 워낙 대규모로 운영하는 과정이다 보니 태도나 역량, 또는 둘 모두 좋지 않은 사람들도 있게 마련이다. 이런 친구가 어떻게 여기 들어온 거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그래도 특별히 문제를 일으키지 않으면 그냥 일시적인 현상이려니 한다. 일을 시작한지 얼마 안됐을 때는 교정의 대상으로 보고 고치려고 해봤었다. 특히 태도 문제는 전염성이 있기 때문에 지적을 하고 바꿔보려고 했었다. 하지만 내가 함께하는 7주라는 기간 동안 극적인 변화를 느껴본 적은 없었다. 지금은 어느 정도 순응을 하게 되었다. 팀에 문제를 일으키거나 하는 게 아니라면 개성 정도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냥 나랑 잘 안 맞는 사람이구나 정도로 넘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도가 안 좋은 교육생을 만나는 것은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다.
빠르게 변하는 상황
이곳의 변화는 회사의 변화보다 빠르게 다가온다. 일단은 교육생이 젊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엇이든 새로운 것을 거부감 없이 쉽게 받아들인다. 교육생 자체도 변화한다. 이전 글에도 썼지만 세대 변화는 분명히 있다. 그리고 취업을 앞둔 시점이라는 시기적 특징상 기업의 니즈에도 빨리 반응을 해야한다. 요새는 AI, LLM, Agent 같은 것이 가장 큰 화두이다. 이 많은 것들이 합쳐져서 끊임없이 변한다. 현장에 있을 때에도 변화를 항상 느끼며 살았지만 이곳만큼 빠르게 바뀌지는 않았었다.
교육을 주관하는 쪽에서도 변화에 드라이브를 걸지만 교육생 자체적인 변화가 더 빠르다. 어떤 프로젝트를 하는지 보면 이를 파악할 수 있다. 비트코인이 화두였던 때에는 블록체인 관련 프로젝트가 많이 있었다. 코로나 때에는 메타버스 스타일의 3D 그래픽을 적용하는 것이 인기있었다. 그러다 경제 상황이나 취업 쪽이 어려워지자 그나마 채용 규모를 유지하고 있는 금융권 쪽으로 관심이 쏠렸고 핀테크 관련 프로젝트가 늘어났다. LLM을 활용하는 것도 2년 전에는 특색있는 것으로 받아들여 졌지만 지금은 기본이 되어 버렸다.
이 모든 변화를 따라가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선택과 집중을 한다. 내가 원래 관심이 있었고 차별성도 있으며 앞으로도 지속성을 보일만한 것에는 시간을 들여 공부를 하지만 나머지 것에는 어쩌면 기존 보다도 덜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휴가의 제약
가장 직접적인 불편함이다. 학기 중에는 따로 쉬는 것이 어렵다. 어쩔 수 없이 휴가를 내기도 하지만 반을 맡고 있을 때는 자리를 비우는 것이 교육생에게 미안해진다. 나를 대신해 줄 사람이 없이 때문이다. 회사 다닐 때는 그냥 하루 가기 싫은 날은 휴가를 내고 정당하게(?) 쉰 적도 있는데 여기는 그게 어렵다. 병원에 가려고 해도 잠깐 다녀오기도 힘들다. 작년에는 여름 휴가 전에 여권 재발급을 받았어야 했는데 구청까지 잠깐 다녀올 시간도 없어서 미루고 미루다 여행 출발 전날에야 간신히 여권을 받는 쫄깃한 일도 있었다.
그래서 교육생이 없는 6월과 12월은 재정비의 시간이 된다. 병원도 몰아서 가고 쌓여있던 개인적인 일들, 집안 일들, 휴가도 그때 몰아서 간다.
남겨진 느낌
이곳은 떠나는 것이 기본이다. 교육생도 떠나고 함께 일하던 코치나 프로들도 떠난다. 이게 반복되다 보니 왠지 나만 남겨진 것 같은 쓸쓸한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어제까지 왁자지껄하던 교육장에 아무도 없는 모습을 볼때면 특히 그런 생각이 더 든다.
배운 점
두려움 극복
두려움 이라고 해야할지 모르겠다. 긴장감에 더 가까울 것 같다. 면접을 앞둔 사람 같은. 처음 반을 맡고 교육생을 만나기 전까지 걱정이 많았다. 모르는 거 물어보면 어쩌지?, 애들끼리 싸우면 어쩌지? 같은 걱정들이다. 모른다고 말하면 실력 없어 보일까봐, 팀 문제를 잘못 건드렸다가 더 큰 문제가 생길까봐 가 그 이유였다. 그래서 교육생을 대면하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지금은 물론 그런 걱정을 안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범위를 명확히 하면 되기 때문이다. 전지전능한 신이 아니고 한계를 가진 한 사람임을 받아들이고 솔직해졌다. 아는 문제이거나 내 경험에 비춰 해줄 조언이 있다면 그걸 성실히 진심으로 하면 된다. 그 밖은 스스로 해결하는 편이 낫다. 물론 교육생의 고민에 경청과 공감은 꼭 필요하다.
먼저 다가가기
원래 내 성격은 내향적이고 사람들에게 잘 다가가지도 않는 편이다. PM을 할 때처럼 특별히 역할이 주어져 있는 게 아니라면 회사에서도 적은 수의 사람들 하고만 교류를 하는 편이었다.
여기 일을 시작한 초반 답답했던 것 중 하나는 팀의 상황을 파악하기 힘들었다는 것이다. 교육생들은 팀에 문제가 있어도 나에게 잘 얘기를 해주지 않는다. 이런저런 이유가 있겠지만 지금까지 겪은 바로는 “그런 걸 얘기해도 되는지 몰랐어요”가 가장 많은 것 같다. 나중에 문제가 더 커지고 나서야 발견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고 그때는 이미 조치하기 늦은 시점일 때가 많았다. 이는 내가 역할을 하는데 방해가 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나에게 오기 전에 내가 먼저 다가가는 걸로 방향을 바꾸었다. 특별히 일이 없을 때에도 자주 팀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가벼운 얘기를 던지며 팀의 분위기를 파악하고자 한다. 그러다 보면 신기한 것이 평소에 조용하던 친구들이 먼저 얘기를 걸어오기 시작한다. 간단한 질문을 하기도 하고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왜 먼저 다가오지 않는걸까? 라고 고민을 하기도 했지만 .. 사실 나도 대학생 때를 생각해보면 그다지 교수나 조교 등에게 잘 다가가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내가 먼저 다가가자 였다. 당연하지만 내가 먼저 다가가는 쪽이 더 피곤하다. 하지만 이 방향이 맞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지속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Try & Error
짧은 주기로 반복되는 일이다 보니 실험을 하기엔 좋은 조건이다. 물론 모수가 사람이고 계속 바뀌다 보니 같은 행동에 같은 결과가 나온다는 보장은 없지만 말이다.
상반기에는 재미있는 시도를 했었다. 교육생이 발표(프리젠테이션)를 잘 하도록 준비시키는 것이 목적이었다. 팀별로 돌아가며 발표를 하도록 했다. 주제는 팀간의 거리감을 좁히고 서로 보며 배울 수 있도록 프로젝트 과정에 대한 것으로 정했다. 예를 들어 우리 팀의 하루(소통과 협업), 이렇게 계획 했어요(마일스톤과 산출물, 방향성, 좋은 개발자 동료, 좋은 개발팀이란?, 프로젝트 회고와 배운 점과 같은 것이다.
결과는 아주 긍정적이었다. 가장 좋았던 점은 교육생들이 좀 더 적극적으로 변했다는 것이다. 평소엔 조용하던 친구들이 숨겨왔던 끼를 발산하기도 했다. 측정하긴 어렵지만 팀웍도 개선되었다고 느꼈다. 무엇보다도 다른 팀은 저렇게 하는구나 하면서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이 보기 좋았다.
처음 시도하는 것이었고 잘 따라올지, 부작용은 없을지 걱정되는 부분도 많았다. 이번에는 다행히 잘 되었지만 이런 시도가 항상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준비에 상당히 공을 들였다. 교육생에게 부담을 지우지 않으면서도 그 효과는 가져갈 수 있도록 고민을 많이 했다. 교육생이 부드럽게 내 의도를 받아들이고 재미있게 과제를 할 수 있도록 최대한 배려했다. 시간은 많이 들었지만 기대했던 대로 어쩌면 그 이상으로 잘 되어서 기뻤다.
코칭
내 역할에는 기본적으로 코칭이 포함된다. 내가 직접 하지 않는 상황에서 다른 사람이 더 잘 하도록 하는 것이 코칭이라고 생각한다. 회사에서도 선배 직원으로서 신입 직원을 멘토링이라는 형식으로 코칭을 하긴 했었다. 하지만 1~3명 정도 소수의 인원이었고 회사 적응이나 업무 적응에 집중한 좁은 범위였다고 생각한다. 이곳에서의 코칭과는 다르다. 어떻게 하면 더 잘 할 수 있을지 고민은 많이 있었지만 막막했다. 그래서 몇 가지 코칭 관련 책을 찾아봤다.
- 해결중심 단기 코칭 : 가장 먼저 읽은 책이고 제목에 끌려서 선택했다. 저자분이 한국 태생에 미국에서 활동하신 여성분이라 놀랐었다. 나의 막연한 고민을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 가르치지 않아야 크게 자란다 : 선수출신 야구 코치가 쓴 책이다. 야구와 직접 관련된 부분을 제외하고는 나의 상황과 꽤나 비슷하고 나의 방향과도 맞는 부분이 많아 흥미롭게 읽었다.
이외에도 기업 환경에 어울리는 성과 향상을 위한 코칭 리더십, 빌 캠벨, 실리콘밸리의 위대한 코치 같은 책을 보려고 사두었다. 좋은 내용이 있더라도 내가 하기 어려운 것들도 많지만 막막한 상황을 해결하고 좋은 방법들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되었다.
지역
배운 점이라고 하긴 뭐하지만 지역(지방)에 대해 알게 된 점이 많이 있다. 나는 원래 여행이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는 걸 그닥 즐기지 않는다. 생활권 안에서는 탐험을 즐기지만 굳이 멀고 모르는 동네를 찾아다니진 않았다.
이전에는 지역 불균형 이라는 게 그냥 뉴스를 통해 보는 남의 이야기 같았다. 하지만 서울을 벗어나 대전, 광주, 구미 그리고 부산(이라기 보다는 김해)을 돌아다니다 보니 많이 체감을 하게 되었다. 일일이 나열하긴 어렵지만 동네마다 특색이 있다. 일단 동네마다 교통이나 신호체계 같은 게 조금씩 다르다. 대표적으로 대전은 동시 신호가 많고 신호 주기가 길다. 대중교통이 좀 불편하다. 대신 공유 자전거인 타슈가 거의 무료로 쓸 수 있어 좋다. 대전은 뭔가 차분한 느낌이 많이 든다. 인구가 수도권에 비해 적어서 그런지 사람들도 여유 있어 보인다. 반면 재개발을 앞둔 것 같은 오래된 동네들은 상당히 낙후되어 있다. 부산 지역은 다리가 많고 큰 차가 많이 다니는 점이 특징이다. 시내 쪽 도로는 뭐 워낙 악명이 높다보니 할 말이 없다. 명지와 같은 신도시 쪽은 깔끔하고 젊은 사람들도 많이 보인다. 어찌보면 내가 가는 곳 중에서 가장 도시 내 격차가 많은 것 같다. 공단 지역은 외국인이 눈에 많이 띈다. 광주는 서울과 신호체계가 비슷한 것 같다. 광역시이고 규모도 꽤 커서 사람이 적잖이 있다. 내가 보통 머무는 동네만 그런지 모르겠지만 학생들도 많이 보인다. 상대적으로 다른 동네보다 정리된 느낌이 많이 든다. 구미는 개인적으로 선호도가 낮은 곳이다. 공장이 많이 빠지면서 상당히 횅한 느낌이다. 이쪽 지역 출신의 교육생들은 종종 이 동네 떠야 하는데하는 얘기를 하곤 한다. 낙동강 강변에서 여유있게 산책할 수 있는 것은 장점이다.
전망
함께 일하는 컨설턴트들이 모였을 때 종종 화두에 오르는 주제가 있다. 이거 끝나고 뭐 하실 거예요? 이 교육사업 자체가 시한을 두고 시작한 것이기 때문이다. 앞서 떠남과 남음에 대해 썼지만 나도 그리고 이 사업도 언젠가 떠나게 될 것이다. 그래서 다들 그 다음을 고민한다. 현업으로 돌아가시겠다는 분도 있고 이미 성공적으로 잘 가신 분도 있다. 갔다가 다시 돌아온 경우도 있다.
나는 뭘 어떻게 해야 할까? 교육 커리어로 이어갈 것인가 개발로 돌아갈 것인가 아예 다른 쪽으로 전환할 것인가. 결론을 내리진 못하고 있다. 많은 고역이 있긴 하지만 아직은 새로운 교육생을 만나는 일이 기대되기 때문이다.
너무 묵혀둔 글이라 그런지 정리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몇 주 뒤면 다시 학기가 시작되고 새로운 교육생을 만나게 된다. 그들에게도 나에게도 좋은 기억이 되길 기대하며 글을 마친다.